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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수요일엔마프 #14] 문제는 관계가 아니다
작성일 : 2023.08.08 11:15:17 조회 : 975

문제는 관계가 아니다

 

조희정(더가능연구소 연구실장)

 

1. 인구감소와 초고령화 위기

 

어느새 인구 감소와 초고령화가 기정사실로 확산되고 있다. 2천만이 거주하는 수도권 밖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지만 지역마다 사정은 다르다.

수도권에서는 인구밀도가 높아서 힘들고, 수도권의 높은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해 나간 인구를 품은 수도권 인근 지역은 저마다 100만 특례시를 꿈꾸는 듯 하다. 그러나 농산어촌이 모두 있는 경기도 안에는 인구가 늘어서 힘든 지역과 인구가 줄어드는데도 제대로 지원을 못받아 역차별이라고 느끼는 지역도 있다.

인구 감소를 해결하려면 적정선으로 인구를 늘려야 하고, 초고령화에 대응하려면 고령사회에 걸맞는 사회 인프라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두 문제 모두 해결이 만만찮은 어려운 문제들이다.

이제까지야 인구수가 국력이었고 100세 시대가 올 것이라며 그저 낭만적으로 기대감만 높이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정작 눈앞에 보이는 현실의 장면은 절대로 낭만적이지 않은 것이 되었다.

물론 갑자기 위기가 발생했고 대응이 전혀 없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2005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제정되었고, 그에 따라 지역의 저출산고령화 관련 조례가 175개가 제정되었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다. 최근 730일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농촌 경제·사회 서비스 활성화법역시 농촌 인구 감소 대응을 목표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앞으로는 이런 류의 법들이 더 많이 제정될 것이다. 그러나 사망률과 출생률 같은 자연적 인구변화에 대해 기본적 사회 인프라가 더 잘 갖춰져야 한다는 해법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길은 보이지 않는다.

문제 진단과 해법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2. 인구의 사회적 증감에 주목하는 관계인구

 

이렇게 제한적인 상황의 한편에서, 오랫동안 지역을 오가는 인구에 주목하여 지역 위기의 해법을 찾으려는 것이 바로 관계인구 개념이다.

출생과 사망같은 자연적 인구변화에 대한 대응은 장기간에 걸쳐 오래 노력해야 할 사안이므로, 기왕이면 지역에 여러 가지 목적을 갖고 오가는 이동인구를 지역과 잘 관계 맺게 하여 사회적 인구 증가를 통해 지역 활력을 도모해보자는 취지다.

일본 총무성이 정의한 관계인구는 관광 이상 이주 미만의 모든 인구를 의미한다. 1회성 관광이 아닌 전제하에, 관심을 갖고 지역 특산물을 구입하거나, 지역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거나, 거주지 외 지역을 자주 방문 하는 사람, 두 지역을 거주하며 지내는 사람,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에 자주 방문하며 고향 일을 거들기도 하는 출향민 그리고 온라인으로 특정 지역에 관심을 갖는 사람 모두가 관계인구다.

 

관계인구 유형

오다기리 토쿠미

(2017)

다나카 테루미

(2017)

사쿠노 히로카즈

(2019)

총무성

(2020)

국토교통성

(2020)

사시데 가즈마사

(2021)

지역 상품 구입

기부

반복 방문

자원봉사

두 지역 거주

 

실험 이주 (노마드)

두 지역 거주

반복 방문

지역행사 참여

원격 수강

타지역에서 지역기업과 협업

지역기업의 대도시 지사에 근무

상품으로 대도시와 지역 연결

대도시에서 지역을 위한 행사 개최

지역에 관심있는 연구회 운영

슬로라이프 지향형(자주 방문, 자원 봉사)

비거주 지역 유지형(출향민, 두 지역 거주)

지역공헌 지향형(기부)

지역지원 지향형

관계심화형 (연고형, 고향납세형)

관계창출형

주변 확대형

주변 확대형 (외국인)

취미·소비형

참가·교류형

취로형

직접기여형

지연·혈연형

기부

온라인형

유역형

단순 소통형

외지 허브 (hub)

디렉터 (director)

 

 

 

 

3. 누구의 어떤 관계인가가 중요하다

 

일본 사회에서 2016년 정도까지 사회적으로 회자만 되다가 정부의 정책으로 공식화된 것은 총무성이 관계용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2018, 중앙정부가 제2기 지방창생정책으로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2020년이다. 길게 보면 7, 짧게 보면 3년동안 일본에서는 관계인구라는 말이 작동해왔다.

2023년 우리나라의인구감소지역지원특별법에는 생활인구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으로 관계인구라는 말이 회자된 적은 있지만 법적으로 유사한 개념이 공식화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길든 짧든 이런 용어가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이유는 외지인의 손을 빌어서라도 지역의 플레이어를 확보하고 싶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그 외지인도 어딘가의 지역 주민일테니, 결국 관계인구라는 발상은 지역 내외의 주민과 주민의 관계 연결을 통해 이 땅의 많은 지역위기를 타개해보자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야 관계인구든 생활인구든 늘리고 싶겠지만 지역에 가는 입장에서 나는 정말 관계인구가 되고 싶어요라는 입장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선뜻 집을 나서기도 어렵고, 직장에 저는 워케이션을 가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건 예비사표를 내는 의미나 마찬가지일테고, 그나마 활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청년층 중에 대중교통이 부실한 수도권 외 지역으로 자차로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도시의 피로감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려는 인구보다는 오늘의 피로감은 내일의 월급으로 회복된다며 꾹 참고 서너시간의 출퇴근을 견디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물론 일본 지자체의 65% 정도가 관계인구 사업을 전개하고 있고, 그 가운데에는 관계안내소까지 착실하게 만들어서 좋은 관계 형성을 유도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의 지자체는 관광이 반복되면, 지역에 대한 관심도 생기고 그러다보면 관계인구도 생기는 것 아니겠는가 하고 일방적인 관광 콘텐츠 홍보에만 열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

 

 

4. 관계를 형성하는 다양한 방식

 

최근에 그나마 착실히 관계인구를 형성하는 일본 지자체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연구해보니 대략 발굴형(지역 자원 발굴), 학습형(지역 경제와 생활조건 배우기), 생활형(지역살이 체험), 향유형(지역문화 향유), 생산형(지역 창업) 그리고 협업형(주민과 협업)6개 유형을 통해 관계안내소를 운영하면서 지역으로의 인구 유입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발굴형 관계안내소는 지역 주민도 잘 모르는 자원, 이미 있지만 외지인의 눈으로 그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자원을 관계인구와 함께 발견하고 잘 가공하여 지역의 가치를 높이는 활동을 전개한다.

학습형 관계안내소는 잘 모르는 지역의 현황을 알리면서 지역에서 가능성을 찾도록 독려한다. 주로 대도시에서 출향민이나 지역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팀 단위로 소규모로 모아서 한달에 한번 정도 지역살이에 대한 강의를 한다.

생활형 관계안내소는 요즘 유행하는 한달살이나 워케이션처럼 지역살이 체험을 중점적으로 수행한다. 산책, 탐험, 주민과의 대화 등을 통해 지역살이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 목적이다.

향유형은 문화창작활동이 많다.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지역 굿즈와 콘텐츠 제작, 지역문화 기획과 공연 등을 통해 지역의 문화를 향유한다.

생산형은 관계인구와 주민의 창업 등을 통해 지역경제를 순환적으로 잘 만들고자 한다.

협업형은 주로 지역문제 해결이나 주민과의 협력활동을 통해 좀 더 깊게 지역과 관계 맺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5. 급한 관계맺기는 없다

 

이들 사례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이주를 전면적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누구라도 처음에 그 지역을 갔을때 주민들로부터 적극적으로 이 곳에서 활동하고 제발 이주해주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멈칫할 것이다. 이사가 그리 쉬운가. 얼마를 받아야 이사를 훌쩍 하게될지 모르지만 돈 받고 오면 결국 돈 떨어지면 떠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서로서로 불편한 방식이다.

 

둘째, 낯선 외지인의 지역 관계형성에 대해 매우 섬세하게 접근한다. 큰 맘 먹고 농사를 지으러 왔다면, 창업하러 왔다면, 지역의 일을 배우고 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자 한다면 으레 밟아야 할 수순이 있을 텐데 그걸 외지인이 척척 곧바로 해내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관계안내소라는 완충 안내 장치를 통해 그들을 지원하고 안내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일방적으로 외지인을 환대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살이가 무엇인가에 대해 알리고 대화하고 의논한다. 지역명도 모르고 그 지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방문할 수도 있는 현실에서 이런 안내와 조정 역할은 필수적이다.

 

셋째, 하드웨어만 성급히 제공하지 않는다. 집만 준다고 냉큼 정착할 순 없는 노릇이다. 지역의 삶의 현실과 의미에 대한 안내와 함께 지역 고유의 문화를 느끼게 해주고 때로는 도시지역의 삶에 지친 피로감을 마음 깊이 위로해주는 역할도 한다.

그래서 향유형 관계안내소가 많은 편이다. 문화의 깊이와 아름다움과 평온함에 스며들다 보면 이내 그 지역이 좋아지기도 하고, 그 지역에서 나의 자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의욕이 생겨나는 것이다.

 

 

6. 문제 진단이 정확해야 좋은 해법을 기대할 수 있다

 

일본 정부나 우리나라 정부나 관계인구와 생활인구를 형성하고자 하는 것은 다양한 플레이어 발굴을 통해 지역 위기를 타개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그러나 정작 관계인구가 될 수 있는 외지인과 그들을 받아들이는 지역의 관계는 동등하거나 수평적이지 않다.

이미 위기인 지역에서 마냥 외지인을 환대할 여력도 없거니와 외지인조차도 그렇게 지역에 갈 수 있는 정신적·물질적 여력이 부족하다. 이러한 한계를 좀 더 섬세하게 고려해야 하고, 무엇보다 관계인구를 도모할 수 밖에 없는 현실 구조에 대해 좀 더 정확한 문제진단을 병행하며 정책과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관계인구는 만병통치약이 아니거니와 지역 위기, 그중에 인구 감소 위기에 작은 숨구멍을 만들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있는 대안일 뿐이다. 망부석처럼 사랑하는 님을 일방적으로 기다리는 방식이라기 보다는 지역살이에 공감하고 지역문제에서 자기 역할을 찾고 싶은 동료를 만드는 어려운 방법이다.

지역에는 이러한 대안 외에 인구 감소 위기를 발생시킬 수 밖에 없는 수많은 문제들이 작동하고 있다. 그런 문제들을 모두 제쳐두고 관계인구 만들기에 혈안이 된다면 과거의 많은 제도적 시도처럼 또하나의 시행착오를 만들게 될 것이다. 언제나 유념해야 할 것은 문제 진단이 정확해야 좋은 해법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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